은퇴 후 중년의 삶에서 여행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아온 인생의 후반기에 마침내 누릴 수 있는 로망과도 같다. 그래서 여가 활동 중 가장 선호하고 바라는 것이 여행이라는 어느 통계의 결과는 너무도 당연하게 느껴진다.
여행이라는 활동이 주는 여러 즐거움, 보고, 먹고, 마시고, 누리는 모든 행위에는 ‘자유로움’이라는 기본 감정이 스며있다. 자유로운 시간, 자유로운 발걸음, 자유로운 생각, 자유로운 마음에서 여행의 즐거움은 비롯된다.
이런 자유를 현상적으로 잘 표현해 주는 경관 중 하나가‘바다’풍경이다. 그래서 바다는 자유로움를 느끼게 해주는 그 자체이다. 끝없이 수평선을 그리며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동안 수고했어. 잘 살아왔어. 지금부터는 너의 자유를 더 누리고 만끽해’라며 중년의 삶을 위로하고 격려해주는 위안을 받는 듯 하다.
그래서 여행지에 바다를 보는 코스가 있으면 출발부터 기대되고 설레인다. 여기서 말하는 바다는 여름의 바다가 아닌 다른 계절의 바다이다.
보통 사람들은 여름에 바다를 찾는다. 여름 바다를 주제로 한 노래들은 한결같이 신나고 열정적이다. 여름의 열기를 잠재우기 보다 시원한 바다와 함께 열기가 증폭됨을 오히려 즐긴다. 해변을 가득 채운 사람들의 열기는 이열치열의 현장이 된다.
그러나 인생을 돌아보며 지금의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보듬어 주고 격려해주는 조용한 시간을 중년의 나에게 선물하기엔 다른 계절의 한적함과 자유로움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 국가이다. 그렇지만 같은 바다라도 동해, 서해, 남해의 느낌이 다르다. 동해의 짙푸른 바다색과 거침없이 부서지는 하얀 파도는 강한 바다의 기운을 전해준다.
서해는 어떤가. 아스라이 희뿌연 연기와 같이 잔잔하면서도 바다와 모래사장의 경계가 불분명한 서정적인 모호함을 전해준다.
짙푸른 바다의 힘찬 기세로 거침없이 밀려오다 순식간에 하얀 파도가 되어 부서지는 청년 같은 동해바다, 불확실한 미래에 아직은 자신의 색을 알 수 없는 회색빛 바다로 확신 없는 선택에 불안해 하는 청소년기의 모호함과 닮아있다.
남해의 바다는 어떤가. 남해의 바다는 적당히 파랗다. 파도도 바다라는 정체성에 필요한 만큼만 적당히 찰랑거린다. 바다 곳곳에 자신들만의 이야기가 담긴 바위섬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어 망망대해처럼 막연하지 않다. 사람이 모여 마을을 이루는 섬도 있고 아무도 살지 않는 존재 그 자체인 섬도 있다.
남해의 바다는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몽돌해변도 있다. 물빛에 반짝이는 몽돌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느 하나 같은 색이 없다. 조금 시선을 떼고 거리를 두고 보면 서로가 조금씩 다르지만 무채색의 조화로운 빛깔로 함께 어우러져있다. 어느 하나 튀지 않는다. 어쩌면 이렇게 예쁠까 손으로 짚어보면 햇빛을 받아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고 모난 곳 하나 없는 매끄러운 감촉에 이름처럼 몽글몽글한 느낌이 마음 속으로 퍼진다.
남해바다는 적지 않은 세월을 살아온 중년의 삶을 닮아 있다고 느낀다.
중년의 바다, 다도해는 너무 강하지 않게, 너무 모호하지 않게, 너무 불안하지 않게 적당히 찰랑거리는 파도처럼, 바다 위에 떠 있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은 돌섬처럼, 해변에 가득 모여있는 맨들맨들한 몽돌처럼 살아가면 좋겠다. 부드럽고 따뜻하게 세상의 조화로움을 이해하며 잔잔한 파도를 맞을 때마다 ‘샤르륵’조화롭고 아름다운 작은 소리에 귀기울이며 살아가면 좋겠다.
중년의 바다, 다도해를 닮은 평화롭고 이웃과 어울러지며 함께 행복한 삶을 살아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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