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같이 토요일 아침인 오늘 아파트 단지를 돌아 동네 뒷산에 오르기 위해 집을 나섰다.
지난 주까지 갖가지 색들의 단풍들로 한껏 치장하여 화려함을 뽐내던 나무들이 줄기의 뼈대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무에 달려있는 잎들보다 바닥에 떨어져 쌓여있는 잎들이 그 세를 더해갔다.
온갖 단풍색으로 물들인 가을의 화려함을 자랑하던 나무들이 어느새 낙엽으로 떨어지면서 앙상한 나무가지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가을의 쓸쓸함을 보여준다. 마치 인생의 굴곡을 축약해 단적으로 보여주듯 하다. 인생의 법칙은 곧 자연의 이치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매해 어김없이 돌아오는 계절의 변화는 우리들의 인생과 닮아 있음을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그 중에서도 가을은 화려함과 쓸쓸한 감정을 동시에 느끼게 해 주는 계절인 듯 하다.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가장 짧은 시간에 연달아 느낀다고 하면 비약이 심한 걸까. 아무튼 가을은 화려함과 쓸쓸함을 동시에 안겨주는 계절임은 분명하다.
오래된 아파트단지의 경륜을 보여주듯 길을 따라 늘어선 은행나무의 노란 단풍잎들이 약한 바람에도 흔들리며 떨어졌다. 봄에 꽃비가 내리듯 가을엔 단풍비가 바람에 흔들리며 춤을 추듯 느리게 떨어졌다. 산 입구를 향해 걸어가다 발걸음을 멈추고 단풍비 내리는 거리를 바람을 느끼며 내려다보았다. 왠지 모를 마음의 허전함이 내 마음을 순식간에 장악했다. 계절의 변화가 주는 감정의 변화들은 얼마전 가을의 풍요로움이 주던 충만감을 누린 마음의 값을 내놓듯이 이제는 가을의 쓸쓸함으로 그 댓가를 지불해야 했다.
동네의 모습이 겨울로 향하는 늦가을의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듯이 뒷산의 풍경들도 나무들마다 화려했던 단풍잎들을 서서히 털어내고 있었다. 불과 지난 주말까지도 가을의 화려함을 칭찬하며 흐뭇한 미소로 걸어 올랐던 그 길을 가을의 쓸쓸함을 안고 시간의 흐름을 받아들이며 마음 한켠 허전함을 달래며 걸어야 했다.

산책코스는 그 날의 시간 여유에 따라 달라지지만 중간 목적지는 항상 같은 곳이다. 고맙게도 요즘은 교회마다 1층에 큰 규모의 카페를 운영한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교회 카페를 자주 이용한다. 주말 산책코스에 필수적으로 중간 휴식지로 들르는 교회 카페는 위치도 산책코스 중간쯤 있을 뿐 아니라 장소도 넓고 게다가 북카페처럼 서점 한쪽 편에 책들이 둘러싸인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빈손으로 몸을 가볍게 하고 산책하고도 교회 북카페에서 새로 나온 책들을 구경하고 모닝커피를 즐기며 독서도 할 수 있는 고마운 장소이다. 우리는 이 교회 카페의 존재를 항상 칭찬하며 감사한 마음을 갈 때마다 입버릇처럼 표현한다. 이 공간이 앞으로도 쭉 우리의 일상에 제공될 수 있길 바라며 기도를 하듯 고마움을 표현하다. 오늘도 우리가 항상 앉는 서점 안쪽 창가에 책 한권을 골라 들고 자리를 잡았다. 다행이도 매번 갈 때마다 마치 예약석처럼 그 자리는 항상 비어있어 우리 차지가 된다. 이 또한 고마운 일이다.
지난 몇 주 올 때마다 집어드는 책이 있다. 가수 장기하가 쓴 에세이 <상관없지 아니한가>라는 책이다. 책 제목처럼 쿨한 자세로 자신의 일상과 생각들을 담백하고 꾸밈없이 적어내려갔다는 느낌을 받았다. 책을 읽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느라 많은 양을 읽지는 못하지만 갈 때마다 재미있게 읽고 있다. 아직 삼분의 일 정도 밖에 읽어보진 못했지만 자신의 일상 생활의 모습, 자신의 생각, 가치관들을 편안하면서도 흥미롭게 또 자신만의 독특한 사고방식을 꾸밈없이 담담히서술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그가 가수로서 나름 개성있고 매력적인 연예인이기 때문에 더 호기심을 갖고 읽게 되는 면도 없지 않겠으나 화려한 연예인의 삶치고는 미니멀리즘과 소탈함을 삶 속에서 실현하고 살고 있다는 기특함이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소유하는 옷가지가 몇 장 안된다든지, 투도어 냉장고를 쓴다든지, 왠만한 연예인들이 소유하는 외제차가 아닌 국내산 소형차를 오랜 동안 쓰며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든지... 으례 짐작되는 연예인들의 삶과는 다른 삶의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했다. 일상 속에서 자신만의 소소한 즐거움을 찾아나가는 작은 노력들이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의 소비를 비난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필요란 사람에 따라 다르고 다만 스스로에게 불필요한 무언가를 취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대해 만족감을 느낀다고 했다. 인생에 군더더기가 없다는 데서 오는 쾌감라고 표현했다.
또 본인은 채식을 점차 늘려가고 있는데 이를 굉장히 기분좋게 받아들인다고 했다. 지구상에 다른 생명을 죽이지 않고 생존할 수 있는 종은 거의 없지만 자신의 생존에 필요한 만큼보다 더 많은 생명을 죽이는 종은 인간밖에 없다는 것이다.
"내가 인간이라고 해서 돼지나 대파 앞에서 으스댈 필요는 전혀 없다. 뭐 그 정도 생각을 할 뿐이다."
얼마나 기특하고 겸손하고 귀엽기까지 한 재밌는 표현인가. 이 부분을 읽으면서 웃음이 나왔는데 이는 젊은 연예인의 심지가 굳으면서도 겸손하기까지 한 삶의 자세가 기특하기도 하고 배울 점도 있어 흐뭇함을 동반한 웃음이었다.

화려한 연예인의 삶 속에서 쉽게 빠져들고 그 화려함이 사라지고 난 이후 쉽게 절망하는 젊은 시절 반짝 성공했다 사라지곤 하는 연예인들이 삶의 몰락으로 이어지는 모습들을 간간히 보게 된다. 그 삶의 굴곡들을 견디지 못해 불안 속에 살아가고 공황장애라는 심리적 어려움을 경험하고 간간히 극단적인 선택을 해 안타까운 삶을 마감하기도 한다.
연예인들이 평범한 사람들보다 더 쉽게 무너지는 이유는 뭘까, 화려한 무대 뒤에서 느껴지는 쓸쓸함이 너무도 극단적으로 대비되어 화려함과 쓸쓸함의 차이를 받아들일 만큼의 내적 단단함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무대의 화려함이 극대화 될수록 일상의 삶이 평범하고 초라하게 까지 대비되어 공허함과 쓸쓸함이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는 겨울보다도 이 가을이 더 쓸쓸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연예인의 삶과 비슷할 수 있겠다. 화려함의 절정을 보여주는 단풍을 끝으로 떨어져 사라져 버리는 허무함, 화려함과 쓸쓸함이라는 양 극단의 모습을 연이어 겪게 만들기에 이 가을이 우리의 쓸쓸함을 극대화시켜 주는 것이 아닐까.
한없이 화려할 수 있지만 자신을 절제하고 나름의 사고를 키워가며 자신의 삶을 정돈하고 스스로를 흐뭇하게 여기며 나름의 방식으로 잘 살아가는 젊고 기특한 뮤지션처럼 가을의 두 모습, 화려함 뒤에 이어지는 쓸쓸함을 충분히 누리돼 마음의 흔들림이 지나치지 않도록 해야겠다.
가을의 화려함과 쓸쓸함 두가지의 감정을 연이어 안겨주는 이 계절을 단단히 견디며 또 다른 계절 겨울을 맞을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
가을의 화려함 끝에 맞닥뜨리는 쓸쓸함이 화려한 조명이 빛나던 무대 뒤에 밀려오는 허전함처럼 내 마음을 텅비게 할지라도 스스로를 위로하며 다독일수 있는 마음의 수련을 더해가며 깊어져야한다고 이 늦가을은 또 한번 가르쳐주고 있다.
한 해 한 해 자연으로부터 또 느끼고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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